생각의 분리

감정이나 생각을 분리하는 것은 가능할까.
아니, 그전에 이러한 과정들은 왜 필요할까.

생각의 분리는 어떠한 면에서는 자의식 해체 같은 어려운 말로도 대체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런 단어들이 과정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나도 뭐 그럴싸한 단어가 있었으면 하지만.

나는 사람을 대할 때, 그의 좋은 점과 그의 나쁜 점을 각각 별개로 생각한다.
나는 그에게 공감하는 점과 그렇지 않은 점을 확실하게 별개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가 문장 한마디를 뱉더라도, 그 문장 안에서 공감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별개로 인식한다.
이것은 ‘깨어있는 인간으로’ 살아가기 꽤나 효율적인 메커니즘을 가진다.

여기서 사용하는 ‘깨어있는’이라는 단어는 상대적인 우월감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
엄밀하게는 ‘깨어있는 척하는 사람’과 ‘깨어있는 사람’ 정도의 구분을 짓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이다.

아무튼, 어떤 개인의 장단점을 분리해서 별개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효율적이다.
그 이유는 바로, 상대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그것을 그의 ‘의견’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해가 잘되지 않는가?
그건 아마도 당신은 ‘분리된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것을 무의식의 단계에서 인지만 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아주 단순한 문장을 살펴보자.

‘저는 강아지를 좋아해요. 그래서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혐오합니다. 물론, 저는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먹어요’

오늘 이야기하는 주제인 ‘분리된 생각’을 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문장을 보고 ‘모순’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이것은 ‘모순’이 아니다. 그냥 아주 단순하게 ‘한 개인의 의견’일뿐이다.

그 사람이 강아지를 좋아한다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 사실이다.
그 사람이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혐오하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 사실이다.
그 사람이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 사실이다.

그의 ‘각각의 생각’은 전부 사실이다. 그것은 그냥, 그에게는 사실일 의견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에 무언가를 더 얹어 판단할 필요가 있는가?

하지만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 중 위문장을 보고 화가 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왜 ‘화’라는 감정이 생기는 걸까?

이것은 보통 ‘다름’을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옳음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무의식적 교만’에서 온다.
자신이 아는 것들이 정답에 가깝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면 해결된다.

생각의 분리는 결국 온전한 ‘인정’에서 온다.
그는 내가 아니다. 나는 나를 제외한 그 어떠한 인간도 통제할 수 없다.

다시 한번 보라.

‘저는 강아지를 좋아해요. 그래서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혐오합니다. 물론, 저는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먹어요’

이 문장이 정말 모순적으로 보이는가?
지구가 둥글지 않다고 사람들을 욕할 필요가 대체 어디에 있나?
그냥 그들은 그것을 믿는 것뿐이고 나는 그저 안쓰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감정조차 오만하지만, 나는 열반에 든 석가모니가 아니기에 완전한 겸손은 아직도 어렵다.

이러한 생각은 결국 나 스스로를 자유롭게 해준다.
이것은 ‘비교’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나는 나고, 그들은 그들일 뿐이다.

최근 모 유튜버의 콘텐츠에서 ‘우리가 판사들을 욕하는 것은 옳지 않다’와 비슷한 내용을 다룬 적이 있다.
실제로 나는 굉장히 심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가벼운 형량을 받는 현 시스템에서 ‘판사’를 탓했다.
당연하다. 나는 그러한 사실을 몰랐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하게만 설명하자면,
법의 존재 형태는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문서로 정해진 것으로만 판단하는 ‘성문법’. 우리나라가 여기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문서의 형식보다 판사의 재량이나 판례 등을 법의 근원으로 보는 ‘불문법’ 미국이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의 법의 근원 자체는 ‘성문법’이기 때문에 판사들은 100년, 180년씩 형량을 줄 수 없다.
반면, 미국은 ‘불문법’이기 때문에 판사들 재량으로 빵 하나 훔치더라도 100년을 때릴 수 있다.
(매우 비약적인 예시이다)

아무튼 이러한 정보를 접하게 되면서, 판사만을 욕했던 나 스스로를 반성했다.
내 무지에 창피했다. 그리고 지금은 판사를 이해한다.

근데 그 이후로 사건사고 유튜브에서 이상한 현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판사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판사부터 바꿔야 한다’ 등의 댓글 등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공감 역시 많았다.
대댓글 역시 모두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모 유튜버의 성문법, 불문법이 영상이 나온 이후는 달랐다.
‘어휴, 무식하면 그냥 가만히 있으세요. 우리나라는 성문법이라 판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같은 댓글이 수도 없이 달렸다.

참 이상하다.
새로운 정보를 지적 갈증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남과 나를 비교하는 수단으로만 활용하려고 안달이 나있다니.
정보를 습득하지 못하고 무지한 채 감정에 호소하는 사람과 얄팍한 지식으로 그들을 우롱하며 자존감을 채우는 사람 중에 과연 ‘깨어있는’ 사람이 있는가?
내가 보기에 전자는 ‘그냥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후자는 ‘안타까운 사람’이다.

생각의 분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준다.
생각의 분리는 잘 못 된 우월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게 해준다.
상대의 말을 온전히 ‘의견’으로 받아들이면 정말 많은 것들이 변화한다.
흡수가 빨라지고, 배움의 속도는 빨라진다.

어쩌면 내 배움의 근간이 여기에 있다.

나는 이 분야를 잘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은 이 분야를 모른다.

그게 사실이다. 그것뿐이다. 그래서 겸손할 수 있다. 나는 그들의 분야를 모르기 때문에.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이런 방법을 통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면,
그래서 나와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기쁜 ‘의견’이 없을 것이다.

실제 컨설팅을 바탕으로 기록을 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칼럼을 다룹니다.
비즈니스 메일: qorcjdrn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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