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청, 그의 사기와 고지능자 그리고 저지능자

자청, 그는 사기꾼인가

자청 처럼 성공과 관련된 여러 사람들이 논란이 되고 있다. 아니, 나름 성공의 상징이라고도 볼 수 있던 여러 사람들이라 정정하겠다.
나도 팝콘이나 먹으며 구경하고 있었지만, 자청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생각을 꼭 써보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됐다. 자청이 공식적으로 내놓겠다던 입장이 나오려면 아직 기간이 좀 남았지만.

자청, 그의 의혹

우선,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자청은 10억이라는 물질적 표현으로 ‘권위’를 발판 삼아 비즈니스를 확장했다는 점이다. 그 외에도 아트라상 운영 당시 ‘거짓’으로 상담사의 학력을 허위 기재했다는 의혹이나, 이상한 마케팅을 운영하며 특별한 것(?)이 있는 것처럼 마케팅했지만, 하청 업체에 일을 의뢰했다는 의혹 등이 있다.

모두 다루기에는 분량이 많기에, 이 글에서는 자청이 이름을 알리기 위해 사용했던 첫 번째 전략인 ’10억이란 권위’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보겠다.

자청, 그가 한 일

자청은 자기 계발 시장에서 나름의 도약을 도왔다고 생각한다. 자청의 등장 전 PDF 시장은 뜨뜻미지근했다. 전자책이라는 것도 싸게 팔든 비싸게 팔든, 일단 소비자가 알아야 살 텐데 자청 덕에 전자책 시장도 같이 활성화되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나 역시도 편승했었고, 2만 원짜리 전자책을 채 몇 권 판매하긴 했었으니까.

여기엔 꽤 중요한 점이 있다. 사실상 대부분의 전자책 내용은 인터넷이나 유튜브 정보들의 짜깁기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저작권 문제만 넘어선다면 말이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소비자들은 ‘돈을 지불해야만’ 그 상품에 ‘가치’가 있다고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금 다르게 이야기해 보자면, 소비자들은 ‘돈을 지불함으로써’ 그 상품에 ‘가치’를 부여하는 듯한 행태를 보이게 됐다.

특히 자청은 무료로 풀려있는 정보들과, 유료로 제공되는 정보들의 ‘차이’와 ‘간극’을 그럴듯하게 잘 설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대중들에게 뿌리 깊게 박혀 있다.

20,000원짜리 전자책 하나와, 무료로 공개되어 있는 유튜브 20편 중 어떤 것이 더 가치 있냐 물으면 대부분이 전자를 택할 것이다.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잘 생각해 봐라.
무언가를 새롭게 배우려고 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책을 찾거나, 강의를 찾거나 하지 않는가? 누가 썼는지, 누가 강의를 하는지 찾아보지 않는가?
더 나아가서는 어떤 것이 더 비싼지 후기는 어떤지 찾아보지 않는가?
강의나 책의 정보를 찾고 있는 것인지 내가 배우고자 하는 것에 대해 찾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 정보를 검색하고, 가정하고, 검증하고, 한계에 부딪치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시간을 산다’라는 표현으로 앞선 스텝을 모두 건너뛰고는 ‘날 도와줄 무언가’를 찾는다.

책이든, 강의든, 그걸 파는 사람들이든. 결국 그것은 스스로 자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무언가에 기대는 행위에 불과하다.
그리고 자청은 이것을 매우 ‘당연하게’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의심의 부재가 만든 자청의 부

나는 현재 여론과 생각이 조금 다르다.
‘사기꾼 말을 들은 네가 잘못됐어’ 이런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뭐 지금은 자청의 입장이 나오지 않았으니 ‘사기꾼’이라 하기엔 다소 불편한 감이 있기도 하고.

아무튼, 내 여러 글에서도 몇 번 이야기했지만 결국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생각한다.
권위 앞에서 흐려지는 판단과 걷어지는 의심들.
우리 개개인은 그것을 단단히 붙잡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그게 생각하는 힘이다.

거짓된 권위로 타인에게 어떤 ‘가치’도 전달하지 못하고 금전적인 이득을 취했다면 명백하게 사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청은 여러 영상에서 ‘본질’에 대해 매우 자주 언급한다.
그렇기에 자청도 알고 있을 것이다. 아트라상 관련 제보 메일들의 내용처럼, 내담자에게 상담한 내용이 그저 그뿐이라면 제대로 된 ‘가치’를 전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런 식으로 사업을 했다면 본인이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나는 거짓된 권위지만 타인에게 받은 금액 이상의 충분한 가치를 전달 한 경우에는 사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법적인 의미의 사기임은 명백하다고도 본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주된 이유는, ‘피해자가 있으면 사기, 없으면 no 사기’라는 다수의 무지성 논리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청의 케이스에서 피해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면 그것은 사기라고 할 수 없는가?
아니, 그는 피해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하더라도 10억이란 수치가 실재하지 않았다면 ’10억’이라는 권위를 내세워 스스로를 광고한 행위는 명백하게 사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대중은 어떤가? ‘피해자만 없으면 돼’라는 식의 논리를 자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와 같은 논리를 가져본 것뿐이다.
권위를 속였든 말든, 피해 없이 서비스를 제공받는 모두에게 금액 이상의 가치를 전달했다면 그것은 사기가 아니라고.
(여기에 대해서도 깊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기회가 된다면 이후에 하겠다)

나는 자청을 좋아했지만 싫어했다. 메일도 몇 번 보냈었고, 내 카페 회원들 몇몇과도 그에 대해 대화를 나눴었다.
나는 그를 충분히 존경했고, 충분히 의심했다.

자청 에게 보낸 메일 중 일부
과거 자청에게 보냈던 메일 내용 중 일부

그의 10억이란 말은 믿지 않았으며, 그가 말한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라는 말은 공감했다.
그가 사기를 치든 말든, ‘권위를 가진 메신저의 말’보다는 ‘메시지’에 집중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의심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의 권위에 기댔고, 결국 그의 부를 축적시켜줬다.

고지능자와 저지능자

자청을 포함한 몇몇이 사용하던 단어들.
그들이 이런 모욕적인 단어로 인간을 분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권위에 호소하는 고지능자

연 10억, 월 1억 등등 이제는 피곤한 단어들.
자청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소위 ‘어그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자주 사용되는 단어들이다.
돈만큼 직접적인 권위는 없고, 대중들은 이 권위에 기댈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걸 알고 있는 놈들끼리 모여서 스스로들을 ‘고지능자’라 칭한다.
이만큼 저지능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한 줄의 학력 등이 가진 힘을 알고 있다.
검증되지도 않은 그 한 줄의 문장이 가진 힘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반대로, 그 한 줄의 문장이 없을 때 생기는 리스크 역시 아주 잘 알고 있다.

나는 몇 년 전 약 10억의 매출을 냈던 적이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주변인을 포함한 몇몇 사람들에게 같은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주려 한 적이 있었다.
무료와 유료 모두.

하지만 정말 당연하게도 ‘얼마의 매출을 냈는가’를 이야기하지 않았을 때, 내 메시지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연 10억 매출이라는 권위를 내세워야만 내 이야기에 신빙성이 생겼다.
당연한 것이겠지.

근데 정말 그것이 당연한 것일까?

저지능자의 생각의 부재

나는 과거부터 메신저와 메시지의 분리를 주장했던 사람 중 하나이다.
내가 연 10억 매출이란 권위를 숨기고 A라는 사실을 말했을 때와, 권위를 내세운 뒤 A라는 사실을 말했을 때 뭐가 다를까?
그 메시지의 신뢰의 주체가 어디에 있을까?
내 사실? 아니면 듣는 이의 입장?

이는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인간이 매우 극소수임을 나타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권위가 있을 때 메시지의 신뢰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권위가 없다 하여 그 메시지의 신뢰가 완전히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하게도 스스로 판단하고 파악해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 알려주지 않으면 무엇이 옳은지조차 파악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옳은 일이, 나에게는 옳지 않은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만 있을 뿐 제대로 인지하는 사람은 드물다.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이것을 배우지 않았다.
스스로 깨닫는 이들 외에는, 이것을 가르침으로 배우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리고 자칭 ‘고지능자’들은 이런 일반적인 사람들을 ‘저지능자’라 분류한다.

나는 ‘저지능’이라는 말을 굉장히 모욕적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모욕을 받고 싶지도 않고 하고 싶지도 않다.

여기저기서 흔하게 주장하는 NPC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저지능자’든 ‘NPC’든 스스로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생각의 부재가, 그들이 개인을 판단하기에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청에 당하고, 또 다른 자청에 당하다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던 자청이 자기 계발 시장에 가져온 결과는 ‘비싼 전자책’을 구매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일종의 가스라이팅이었다고 생각한다.

자청의 오랜 활약으로 현재 2만 원 남짓한 전자책을 구매하는 것은 ‘배움’을 위해 지불하는 나름의 최소단위가 되었고, 몇 십만 원을 호가하는 강의들 역시 ‘당연히 지불해야 할 가치’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의혹과 부정들로 인해 앞으로 시장은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확률이 높아졌다.

연이은 유명 유튜버들의 배신으로 사람에 대한 경계가 더욱 심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그들이 했던 모든 메시지가 부정당할 확률이 높다.
분명히 메시지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제 ‘배움’ 자체를 꺼리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제 정말 좋은 지식이나 정보들도 그냥 거절하는 경우가 생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것대로 강의팔이들에게 휩쓸리는 모양새일 뿐이다. 결국 그들의 말을 증명하는 꼴이 된다. 자청이 뜰 때 전자책 시장이 뜨고, 자청이 사라지니 전자책 시장이 사라진다면 결국 또 한 번 당할 뿐이다.

우리는 배움에 대해 굉장히 인색하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대한 장벽을 낮춰준 것이 자청이라 생각한다. 그것에 대해서는 마땅히 존중해야 한다. 그가 아니었다면 책을 한 권도 안 읽었을 사람들이 더욱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은 것은 비판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고.

우리는 돈을 지불하고 배움을 사는 것에 그 가치를 지불한다기보다는 스스로에게 족쇄를 달아 원동력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돈을 냈으니, 돈이 아까우니까 해야지’

절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결국 ‘무료 정보’에 대한 가치를 판단하는 각각의 기준이 생성되기 어렵게 만든다.
자청의 입장을 봐야 확실해지겠지만,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성공팔이들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다수가 결국 그 벽을 넘지 못한다면, 결국 언젠가 또다시 다른 자청에게 당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지금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그가 사기꾼이니 아니니 판단하는 것보다 현 상황으로 인해 이전에 개방되었던 ‘배움에 대한 소비시장’이 다시금 위축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그 누군가도, 그에 대해 충분한 비난이 끝난 후에는 내 글이 전하는 메시지를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실제 컨설팅을 바탕으로 기록을 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칼럼을 다룹니다.
비즈니스 메일: qorcjdrn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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